킹시국 재택근무 체험기 - 3

2020. 5. 20. 02:08Random

들어가며

??? : 아 제발 집 좀 갑시다

재택근무는 노래방 서비스와도 같았다. 매주 목요일이면 연장 공지가 뜬다. "재택 근무 기간을 다음주까지로 연장합니다"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음주 목요일에 또 다시 "재택 근무 기간을 다음주까지로 연장합니다" 라는 공지가 뜬다. 아무리 인심 좋은 노래방을 가도 어지간해서는 이렇게 서비스를 퍼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지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드디어 출근하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연휴가 지나자마자 다시 확진자가 늘어 또 연장됐다. 1년의 4분의 1을 지금 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셈이다. 제발 빵댕이는 집에서 요일바 음악이나 들으면서 흔들어라.

집으로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난 자취를 잘 하는 인간이 아니다. 집에 혼자 놔두면 알아서 인생을 망치는 부류인데, 재택 근무 장기화와 맞물리자 아무래도 힘든 점들이 많았다. (그래봐야 애 키우는 분들만 하겠냐마는) 어차피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못 하는데, 서울에 계속 있는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주말에 짐을 싸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확진자 0명의 청정 구역이기도 했고, 의식주를 묻어갈 수도(?) 있었으니. 재택 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월세를 의미없이 날려버리긴 했으나, 돈 아끼겠다고 그곳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맨날 컴퓨터만 하니까 그렇지!

컴퓨터 : 내 잘못이냐?

소싯적에 온라인 게임 좀 해봤던 분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비슷한 잔소리를 들었을 것 같다. "맨날 컴퓨터만 하니까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닌데, 계속 해서 듣다 보면 '잔소리는 됐으니까 병원이나 데려다 줘..' 하며 울컥하게 된다. 근데 고3 때 입시 스트레스로 배 아파서 한밤중에 응급실 갔다 왔을 때에는 왜 "맨날 공부만 하니까 그렇지!!" 안 해줬는지 궁금하다.

여하튼, 나는 이게 게임에만 적용되는 대사일 줄 알았는데 웬걸. 무려 근무에도 적용되는 스페셜 가불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계속 두드리는 광경은 어머니로 하여금 수능 끝나자마자 날밤을 새며 마비노기 영웅전을 하던 예비 대학생 제로벨을 떠올리게 했던 듯하다. 개발자라는 직업상 이 루틴은 숙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체력과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끔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우려 섞인 충고의 말을 피할 수 없었다. "운동 좀 해라", "직업 잘못 선택한 거 아님?", "그러고 어떻게 평생 일하냐?" 아. 마지막 대사는 그래도 답변할 수 있었다. "어머니, 어차피 이 직종의 평균 재직기간은..."

한달 넘게 머리도 안 자르고 면도도 안 했다. 아래 이미지는 정말로 내 모습이었다.

흘려들을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 건 나도 체감하고 있었다. 특히 입사 이후 시력이 0.3이나 떨어졌을 때에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간간히 링 피트 어드벤처를 하거나, 밖으로 산책도 다녀오곤 했다. 우리 모두 건강을 잘 챙기도록 하자.

밖에서 못 모이면 섬에서 만난다 - 모여봐요 동물의 숲

이제는 식은 떡밥이긴 한데, 동숲 이야기도 잠깐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코로나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참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다. 강원도 감자 포켓팅, 400번 넘게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 등. 원래 3월 20일에 발매되는 동물의 숲보다는 둠 이터널에 관심이 많았는데, 입사 동기들이 우르르 동숲을 잡기 시작해서 분위기에 이끌려 나도 시작했다. 

동기 방에는 한달 내내 동숲 이야기가 올라왔다고..

나중에는 아예 스위치도 없는데 스위치까지 사는 사람까지 등장해서 재미있게 놀았다. 역시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닌텐도.

밖에서 못 만나니 섬에서라도.. 별똥별과 함께.jpg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명백하게 다가온 한계점이 몇 있다. 그 중 도드라진 게 '그림을 그리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개발자라고 항상 키보드와 코드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특히나 회의를 할 때에는 화이트보드에 즉석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격 회의에서는 그런 부분에서 제약이 있었다. 어떤 날은 누가 마우스로 그림 그리기를 시도했었는데, 시도 1분만에 세상 쓰잘데기 없는 짓임이 판명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트에 아날로그로 그린 다음에 카메라에 비추는 방법 같은 것을 써야했다. 나는 아이패드에 그리면서 화면 공유를 함으로써 깔끔하게(?) 회의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펜 딸린 타블렛 있으면 이렇게 좋다. 강추한다. 혹시 영업이나 광고글로 보인다면 오해다. 애플 쉬벌롬들 지옥에나 떨어져라ㅗㅗ

꼐속일지아닐지몰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