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시국 재택 근무 체험기 - 2

2020. 3. 29. 18:48Random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의 저서를 생각했다면 미안. 그것보단 훨씬 싼 느낌의 '인간의 조건'이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내 이야기는 아니다.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에서의 첫 대학 생활과 자취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 하나는, "인간처럼 살기가 생각보다 참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사도 잘 분담하고 정리정돈도 안 시켜도 알아서 척척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면 좀 덜 고생했을 텐데, 천성이 자유분방한 잡초와도 같은 나는 가족을 떠나자마자 놈팽이가 되었다. 정리정돈, 청소, 요리, 빨래, 설거지. 이 모든 것을 직면한 순간 가사와 업무 두 가지를 병행했던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았으며 내가 앞으로 가정을 가질 자격이 있는 지에 대한 의문 또한 무럭무럭 자라났다.

특히 그 중 제일 부담스러웠던 것은 요리와 설거지였는데, 이건 기한 내에 처리가 되지 않으면 후폭풍이 무시무시한 업무였기 때문이다. 청소? 먼지를 더 먹게 되겠지만 개의치 않는다. 정리정돈? 가끔 물건 안 보여서 빡칠 때가 있다는 거 말곤 상관 없다. 빨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될 일이잖아. 그런데, '먹고 사는 것'은 며칠 미루면 대재앙을 보게 된다. 유통기한이 지나 썩는 식재료들, 설거지가 미뤄져 냄새가 나는 싱크대. 화룡정점의 음식물 쓰레기! 내 자취생활의 최대 적은 바로 '먹고 사는 것'이었다.

사 먹는 음식은 제조 과정을 알 수 없고, 대체로 영양보단 맛을 중시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비위생적이며,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이는 매우 타당한 인식이다. 자취를 시작했을 때 가족들이 제일 걱정했던 것은 다름아닌 식사였다. 집에서 해 먹지 않는 이상은 끼니 전부를 사 먹어야 할 테니. 그런 등쌀에 떠밀려 엉겁결에 자취요리를 시작했다. '이왕 먹는 거, 돈 좀 더 쓰더라도 맛있게 먹자'는 생각으로 초기에는 참 여러가지를 시도해 봤다.

와규 숙주볶음이라든가
낙지 볶음이라든가
뭔가 모양새는 이상하지만 사케동(연어덮밥)까지

위의 요리들은 지금 시점으로 최소 2~3년 전 사진들이다. 그 이후의 자취 요리 사진은 없다.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 자취 요리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 1인 가정에서 마트에서 파는 재료의 양을 제대로 소화하기 쉽지 않다. 소량 판매는 비싸다. 그렇다고 값 싼 다량 판매를 사면 다 먹기 전에 절반 정도는 썩어서 버리게 된다. 결국 돈 낭비에 시간 낭비가 된다.
  • 한 번 만들 때 2끼 이상분이 만들어지는 요리들이 있다. 이런 날 저녁 약속이라도 잡히면 그 요리는 다음날 버린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사회성을 포기하든지, 사회성을 위해 가정을 파괴(?)하든지의 죽음의 이지선다가 남는다.
  • 범용성 높은 재료, 뒤처리가 간단한 요리를 찾다보면 결국 짜장과 카레만 만들고 하루 3끼 카레만 먹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자취 요리가 사 먹는 것보다 싸다고 할 수도 없다. 만드는 데 드는 품, 치우는 데 드는 품, 그리고 식당은 대량 구매를 통해 원재료를 더 싸게 들인다는 점 생각해보면 비용적으로는 집에서 해 먹는 게 손해로 느껴진다.

이러한 이유로 난 언젠가부터 자취 요리를 그만 뒀고, 이사를 가면서는 아예 대부분의 요리 기구들을 처분했다. (냉장고에서 30L짜리 음식물 쓰레기가 나왔다는 것은 비밀이다.) 취직하고 나서는 아침과 점심을 회사에서 먹고, 퇴근할 때에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므로 주말을 제외하고선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결국 다시 요리를 시작해야만 했다. 밥은 오뚜기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메뉴는 주로 카레로. 그렇게 연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참다 못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나중에 하겠다.

얼굴 없는 화상 회의

우리 팀은 매일 아침에 데일리 스크럼(Daily Scrum)을 한다. 나름 개발자 블로그니까 스크럼 진행방식을 공유하자면

  •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 어제 뭘 했는지, 오늘 뭘 할건지 공유하고
  • 같이 논의할 사항은 간단하게 의견을 구하고
  • 마지막으로 전달 사항을 전달 받는다.

재택 근무가 시작됐다고 데일리 스크럼이 없어지진 않았고, 대신 우리는 화상 회의를 통해서 스크럼을 진행하게 되었다. 라인은 다국적 기업이기도 하고, 리모트 근무 제도까지 있던 회사이니만큼 이를 위한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이미 쓰고 있었다. 요즘 언급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진 미국의 Z사 제품을 원래 전사적으로 사용 중이었는데, 나는 이번 재택근무를 계기로 처음 써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회의니까 얼굴을 보고 하는 게 좋겠지?' 하며 입장하자 나와 리드님의 얼굴만 보였다. 이후로도 계속 카메라를 켜고 회의에 임했지만, 근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 쯤 되던 날, 늦게 일어나 씻을 시간이 없던 나는 카메라를 껐다. 리드님도 언젠가부터 카메라를 껐다.

에반게리온의 제레도 근엄하게 회의하지만 모니터 뒤에서는 코 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매일 아침을 얼굴 없는 화상 회의로 시작하고 있다.

가끔은 쉬어가며 합시다

출퇴근을 하던 시기, 업무 중 잠깐의 커피 타임을 갖는 게 얼마나 나에게 활력을 주는 지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코드와 씨름을 하다가도, 4시쯤이 되면 머리도 식힐 겸 팀원들과 같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근황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연령대가 다양해서 육아의 고충부터 새로 살 게임 고민까지 정말 별의 별 이야기들이 나왔고, 나에게 이런 루틴은 직장 생활의 일부였다. 어느 날은 팀원들과 커피를 마시고, 어느 날은 입사 동기들과 커피를 마셨다. 문제는 재택 근무 이후로는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것. 며칠을 혼자 빡코딩(?)을 하다가, 조심스레 동기 단체채팅에 화상회의 링크를 띄웠다. 커피 타임마저 원거리로 가지게 된 것이다.

화상 회의 프로그램의 특수 기능으로 가짜 배경이 들어간게 포인트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켜놓기만 해도 ASMR이 되었고, 보여지고 있음(?)을 느끼기에 덜 해이해질 수 있었고, 중간중간 고충을 공유하면서 일에 대한 적절한 집중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별 거 하지도 않으면서 항상 디스코드로 보이스챗 켜놓는 동생 놈이 이해가 갔다. 이 첫 날의 카페 타임 이후, 우리는 매일 '줌 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꼐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