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시국 재택근무 체험기 - 특별편. 랜선 송년회

2020. 12. 19. 18:16IT/Retrospective

들어가며

 

 

재택근무 체험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연재될 줄은 몰랐다. 원래 올해 말까지만 예정되어 있던 재택근무였으나, 다시 연장 되어서 내년도 다시 재택 근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금 당장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일 터. 크리스마스 때 잡혀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고향에서 은거중이다. 백신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내년 중에는 상황이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신나는 랜선 회식

회사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업무만 계속 잡고 있으면 사기 진작이 되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분들과의 케미도 잘 맞아야 하고, 중간 중간에 기분 전환 정도는 들어가야 직원들도 오래 다녀줄 수 있다. 그래서 업무 중간에 Tea Time을 가지기도 하고, 회식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난감하게도, 우리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팀에서 쓸 수 있는 예산은 점점 쌓여가는데, 쓸 명분은 없는 상황. 초반에는 도서 구매를 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소비해보려 했으나 이 방식도 한계가 있었다. 성인 평균 도서량 7.5권(2020년 기준)인 이 나라가 책을 살 돈이 없어서 안 읽는 것은 아니지 않나. 특히 한 분은 프로젝트 런칭 겸, 나의 팀 이동을 축하할 만한 자리가 따로 없었다는 점을 아쉬워 했었다. 그리고 때마침 들려오는 옆 팀들의 랜선 회식 후기. 우리 팀도 랜선 회식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색했던 첫 랜선 회식

랜선 회식의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시간을 정한다.
  2. 회식 시작 전에, 먹을 음식을 구한다. 구하는 방법은 배달 앱을 사용해도 되고, 픽업을 해 와도 되고, 장을 봐 와서 직접 만들어도 된다.
  3. 결제 시에 법인 카드로 계산한다. 이에 대한 비용을 나중에 정산 요청하기 위함이다.
  4. 정해진 시간이 되면 각자 온라인 회의에 접속해서 각자 먹방을 시전한다.
  5. 그렇게 떠들다 적당하게 시간이 지나면 파한다.
  6. 비용 정산을 올린다.

시니어 분들이 특히나 이 과정에 대해 거부감을 많이 드러냈다. "오.. 오글거릴 것 같아요" 라는 반응.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스타 스토리 생중계나 카카오톡의 라이브톡 기능, 디스코드의 화상 채팅 같은 기능이지만 이것을 별 목적 없이 심심해서 틀어본 사람은 20대 인싸들이나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첫번째 랜선 회식 이후로 "생각보다는 할 만 했다"는 피드백이 나왔고, 이후로도 우리는 정기적으로 랜선 회식을 하게 되었다.

안 되겠소, 게임을 합시다

두 번째 랜선 회식부터는 단순히 밥 먹고 헤어지는 수준에서 끝나기보다, 다 같이 즐길만한 게임을 해보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다른 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랜선 회식과 무관하게 원래부터 점심시간 롤을 하는 등의 여러가지 활동들을 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 팀에는 그런 정기적인 놀이가 없었다. 두 번째 회식에는 내가 레크리에이터로 참가할 예정이었다. 회식 때 무엇을 해야 모두가 즐길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나는 MT 게임 몇 개를 선정했다. 연예인의 눈, 코, 입만 잘라서 보여준 후에 누군지를 맞추는 눈코입 퀴즈, 인물을 보여주고 맞추는 이미지 퀴즈, 자기 자신을 주제로 내는 TMI 문제로 구성하여 진행을 했었고, 첫 진행이라 미숙했지만 어찌저찌 잘 끝났다.

이 사람은 누굴까요?

현실에서는 오타쿠 찐따인 내가, 랜선에서는 특급 인싸?!

그렇게 세 번의 랜선 회식을 거쳐왔다. 그러던 어느 날, 메신저에서 리드님이 DM을 보냈다. 이번 랜선 송년회 준비 팀을 모집하는 데, 조직장님이 날 직접 지명을 했다는 것. 아무래도 랜선 회식 때 레크리에이터로 들어갔던 이야기가 전달되어서 그 분 뇌리에 강렬히 남은 듯했다. 사실 랜선 회식에서 썼던 게임들은 동기 MT 때 주최자가 들고온 게임, 친구 생일 파티에서 친구가 들고온 게임들을 모방해서 넣은 것이었다. 인싸의 것을 모방했더니 회사에서도 비슷한 이미지가 잡혀버린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서로 다른 팀에서 한 명씩 해서 송년회 준비 팀이 꾸려졌다.

자기 생일에 파티는 커녕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 내가 이런 기념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나, 아무래도 랜선이다보니 물리적(?)으로 고생해야 할 일들은 별로 없어서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각자 역할이 정해졌는데, 난 그 중에서 아래와 같은 역할을 맡았다.

  • 부서 사람들을 칭찬하는 설문조사 작성 및 발송
  • 부서 최고의 코드 리뷰를 찾는 설문조사 작성 및 발송
  • 송년회 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 구상 및 진행

설문조사, 하기 참 힘들다.

설문조사는 진행이 약간 미흡했던 감이 있다. 여러 팀으로 이루어진 부서고, 개발자가 아닌 분들도 섞여 있었기에 한 개의 설문조사를 일괄적으로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또한, 설문 주제를 더 늘이려다가 줄이고 줄여서 6개의 항목으로 추려서 보냈는데, 이마저도 참여율이 아주 높게 나오진 않았다. 하기야, 나도 마지막 날 되어서야 설문 제출을 했었는데 기억 되짚느라 1시간을 쓴 것 같았다.

나는 설문을 받을 때, 조금만이라도 앞 뒤가 안 맞거나, 항목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지 않으면 아예 설문 참여 자체를 안 하거나, 하긴 하되 서두에 "질문 내용이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답장은 드릴게요 ^^" 를 붙이고 보낸다. 그런데 내가 설문을 만들어 보낼 때에는 그렇게 디테일을 신경쓰진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에는 좀 더 진중하게 임해야겠다.

송년회 게임

게임은 MT와 랜선 회식 때 썼던 것들을 참조했다. 다만 재탕을 하면 우리 팀원들이 유리했기에 문제는 전부 다 새로 써야만 했다. 최종 선정된 게임들은 아래와 같다.

  • 캐치 마인드
  • 코딩으로 노래 맞히기
  • 이미지 퀴즈
  • 눈코입 퀴즈

캐치 마인드는 대충 준비했다. 작년 여름에 캐치 마인드 모바일을 한창 즐겼었다. 오랜만에 다시 접속하니 그 당시 내가 그렸던 그림들 기록이 남아있어서 이걸 그대로 가져다가 썼다. 초창기, 그림을 보고 제목을 맞춘다는 컨셉과는 달리 이제 개드립이 정체성이 된 게임이라 점수 편차가 꽤 컸다. 아재 개그를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승리하는 게임 느낌이랄까.. 급기야는 나중에 "출제자 나와" 소리까지 나오게 되었다.

엌ㅋㅋㅋㅋ개꿀잼인데

코딩으로 노래 맞히기는 말 그대로 코드 스니펫을 보고 어떤 노래인 지를 맞추는 퀴즈다. 내 창작물은 아니고, 우리 부서에서도 예전에 한 적이 있었다. 아이디어가 쉽게 안 떠올라서 하기 힘들 것 같았는데, 막상 하려고 하니 생각보다는 꽤 나왔다. 프론트와 백엔드 개발자가 함께 참여하는 자리다 보니, js와 자바/코틀린을 번갈아서 작성해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일 잘 쓰는 언어가 자바다보니 결국에는 전부 자바로 작성해줬다. 그러나 언어는 난이도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코드는 그냥 모양새일 뿐.. QA 분이 문제를 맞추는 순간 더욱 확실해졌다.

이 게임은 나이대, 성별과 상관 없이 모두가 알만한 노래로 구성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다. 여기에 아이돌 노래를 내거나 하면 무수히 많은 욕설의 요청이..

어떤 노래일까요?

나머지는 이미지 퀴즈, 눈코입 퀴즈였는데 막상 송년회를 실제로 진행해보니 각 코너마다 딜레이가 발생해서 준비한 게임에서 후반전은 다 잘라야만 했다. 그렇게 해도 20분 초과해서 송년회가 끝났다. 꽤 재미있게 준비한 게임들이었는데 조금 아쉬움은 남으나, 어차피 나는 다음 MT나 랜선 회식 때에도 이것들을 써야할 것 같으니, 미리 준비했다고 생각하려 한다.

우리도 한다, 라이트닝 토크

라이트닝 토크(Lightning Talk)란, 5분~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발표자가 간편한 이야기를 하는 세션이다. 주제는 뭐가 되어도 상관 없다.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하게 된 이야기, 고양이가 악플을 써서 판사님 앞에서 데꿀멍한 이야기(?), 길가다 500원을 주운 이야기 등등 다 가능하다. 다른 부서에서는 일찌기 정기적으로 라이트닝 토크를 해 왔었는데, 우리 부서에서 하는 것은, 내가 알기로는 최초다. 나는 이 라이트닝 토크는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추천했다. 다른 사람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라이트닝 토크 세션만큼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참가원들의 참여율도 높이면서 비용도 줄일 수 있는 매우 좋은 자리였다.

처음에는 참가율이 저조해서 "역시 우리 부서 개발자분들은 다 소심이들 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우려와 달리 여섯명의 발표자가 모였다. 그리고 이 분들이 다 하나같이 정말 열성적인 발표를 해주셔서 이 세션에서만 30분의 초과시간이 발생했다.

발표자 중에서는 나도 있었다. 천체 사진 입문기와 VR 입문기를 발표했는데, 이에 관한 글은 나중에 블로그 포스트로 올리도록 하겠다. 다른 분들은 사이드 프로젝트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고, 책 출판 체험기를 공유해주기도 했었고, 여행기를 공유하기도 하셨다. 평소에는 다른 팀에 누가 있는지도 제대로 알기 힘든데, 이러한 자리를 통해 부서 내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 에피소드를 직접 들어봄으로써 친밀도가 올라가지 않았나 싶다. 

마치며

뿌-듯

대학을 다니면서, 술집을 빌려서 자기 생일파티를 열거나, 파티룸을 찾아다가 종강 파티를 기획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 활력있는 아이들이구만"이라 생각했었고, 앞으로도 이런 기획을 내가 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등 떠밀려 시작한 송년회 기획이었지만 여러모로 많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개발자 집단이라는 특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준 부서 분들께 감사할 뿐이다.

다사다난한 2020년도 슬슬 끝나간다. 내년에는 조금 더 좋은 일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